이용규 (야구 선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용규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2004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KIA 타이거즈 시절 빠른 발과 높은 출루율을 바탕으로 팀의 1번 타자로 활약하며 2006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여 병역을 해결했다. 한화 이글스, 키움 히어로즈를 거치며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으며, 3번의 골든 글러브 수상, 최다 안타, 최다 도루 기록을 보유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 프로 야구 200도루 클럽 - 박용택
박용택은 LG 트윈스에서 19시즌 동안 활약하며 KBO 리그 최초로 통산 2500안타를 달성하고 도루왕, 타격왕, 골든글러브 수상 등 많은 기록을 남긴 후 은퇴하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LG 트윈스에서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한국 프로 야구 200도루 클럽 - 김재박
김재박은 아마추어와 프로야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전직 선수이자 감독으로, 국가대표와 프로팀에서 우승을 이끌었으며, 스몰볼 전략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 성동초등학교 (서울) 동문 - 이종민 (2001년)
이종민은 2001년생 대한민국 야구 선수로, 2020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하여 2021년에 데뷔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활동하며 통산 25경기에서 1승 9패, 평균자책점 8.15를 기록했다. - 성동초등학교 (서울) 동문 - 이성곤
연세대학교 야구선수 출신 이성곤은 KBO 리그에서 외야수로 활동하며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를 거쳐 은퇴 후 2024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보조코치로 활동 중이다. - KBO 도루상 수상자 - 박용택
박용택은 LG 트윈스에서 19시즌 동안 활약하며 KBO 리그 최초로 통산 2500안타를 달성하고 도루왕, 타격왕, 골든글러브 수상 등 많은 기록을 남긴 후 은퇴하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LG 트윈스에서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KBO 도루상 수상자 - 서정환
서정환은 전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선수 시절 유격수로 활약하며 도루왕을 차지했고, 은퇴 후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KBO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한다.
2. 프로 선수 경력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했지만, 주로 2군에서 활동했고, 2:2 트레이드를 통해 홍현우와 함께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상대는 소사오칭과 이원식이었다.[10] 2005년에 기아의 전 경기에 출장해 31도루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잡았다.[10] 빠른 발을 바탕으로 넓은 중견수 수비 범위를 자랑했고, 높은 출루율과 뛰어난 도루 능력을 겸비하여 팀의 1번 타자로 활약했다.
2006년에는 154안타로 최다 안타를 기록하고, 타율 0.318(KBO 리그 3위), 득점 2위(78점), 도루 3위(38개)를 기록하며 첫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11] 시즌 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도하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다. 2007년에는 우익수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몸 쪽 브레이킹 볼에 약점을 보이며 타율이 0.280으로 하락했고, 도루도 17개에 그쳤다.
2008년에는 타율 0.312, 130안타, 28도루를 기록하며 부활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여 26타수 13안타, 타율 0.500을 기록하며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여 병역을 해결했다.[11]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후 무릎을 꿇은 장면은 일본 대표팀 주장 미야모토 신야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본인은 구리야마 히데키와의 대담에서 "병역 면제가 결정되어 기뻤을 뿐, 울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결승전에서는 페드로 라소를 상대로 우익선상 적시 3루타를 기록하며 결승 타점을 올렸다.
2009년에는 시즌 초반 복사뼈 골절상을 입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1] 200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를 연상시키는 번트로 득점을 올리며[12]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 7월 29일 롯데전에서는 한 이닝 7타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5타수 4안타, 2홈런(3점, 만루), 8타점으로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를 기록했다.[2] 이 때 개인 통산 첫 연타석 홈런과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8월 29일 넥센전에서는 박준수를 상대로 20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며 한 이닝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 기록을 달성했다.[2]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1년에는 개인 최고 타율인 0.333을 기록하며 5년 만에 두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12년에는 44도루로 첫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3년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3차 협상까지 이견이 생겨 협상이 결렬됐고, "내 마음은 광주에서 떠났다.", "광주를 떠나겠다"라고 언급하며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3]
2. 1. KIA 타이거스 시절 (2005년 ~ 2013년)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했지만, 주로 2군에서 활동했고, 2:2 트레이드를 통해 홍현우와 함께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상대는 소사오칭과 이원식이었다.[10] 2005년에 기아의 전 경기에 출장해 31도루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잡았다.[10] 빠른 발을 바탕으로 넓은 중견수 수비 범위를 자랑했고, 높은 출루율과 뛰어난 도루 능력을 겸비하여 팀의 1번 타자로 활약했다.2006년에는 154안타로 최다 안타를 기록하고, 타율 0.318(KBO 리그 3위), 득점 2위(78점), 도루 3위(38개)를 기록하며 첫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11] 시즌 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도하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다. 2007년에는 우익수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몸 쪽 브레이킹 볼에 약점을 보이며 타율이 0.280으로 하락했고, 도루도 17개에 그쳤다.
2008년에는 타율 0.312, 130안타, 28도루를 기록하며 부활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여 26타수 13안타, 타율 0.500을 기록하며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여 병역을 해결했다.[11]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후 무릎을 꿇은 장면은 일본 대표팀 주장 미야모토 신야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본인은 구리야마 히데키와의 대담에서 "병역 면제가 결정되어 기뻤을 뿐, 울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결승전에서는 페드로 라소를 상대로 우익선상 적시 3루타를 기록하며 결승 타점을 올렸다.
2009년에는 시즌 초반 복사뼈 골절상을 입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1] 200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를 연상시키는 번트로 득점을 올리며[12] 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 7월 29일 롯데전에서는 한 이닝 7타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5타수 4안타, 2홈런(3점, 만루), 8타점으로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를 기록했다.[2] 이 때 개인 통산 첫 연타석 홈런과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8월 29일 넥센전에서는 박준수를 상대로 20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며 한 이닝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 기록을 달성했다.[2]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1년에는 개인 최고 타율인 0.333을 기록하며 5년 만에 두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12년에는 44도루로 첫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3년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3차 협상까지 이견이 생겨 협상이 결렬됐고, "내 마음은 광주에서 떠났다.", "광주를 떠나겠다"라고 언급하며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3]
2. 2. 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 2020년)
이적 후 첫 해에는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했지만 2015년에는 김경언과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팀은 6위를 기록했다.[4] 2016년 9월 9일 kt전에서 장시환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 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13] 같은 해 9월 11일 SK전에서 자신이 쳐 낸 파울 타구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9월 22일에 부상으로 인해 시즌 아웃됐다.[14] 2017년에 주장을 맡았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시즌 시작 후 20일 후에나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또한 3번의 추가 부상으로 본인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냈고, 2018년에는 134경기에 출전했지만 2할대 후반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8년 시즌 오프에 두 번째 FA가 되어, 2019년부터 한화와 2년 계약(1년 연장 가능)을 체결했다. 그러나 2019년 시즌 전 트레이드 파문으로 인해 구단 내부에서 무기한 활동 정지 징계를 받았다.[1][15] 2020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뽑히며 복귀했다. 팀에서 유일하게 규정 타석을 채웠으나 시즌 후 방출됐다.2. 3. 키움 히어로즈 시절 (2021년 ~ 2023)
2020년 11월 10일에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하였다.[16] 2021년부터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했다.[5] 2022년 4월 19일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역대 15번째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6]3. 국가대표팀 경력
이용규는 2006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아시안 게임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처음 활동했다.[17]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2번 타자, 우익수로 활약,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이승엽의 결승 홈런 발판을 마련하고 라소를 상대로 1타점 2루타를 쳐 내는 등 타율 0.500(26타수 13안타)로 타율 2위를 기록하며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18]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이종욱의 부진으로 주전 중견수 겸 1번 타자로 활약하며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으로 상대 투수들을 흔들었다. 일본과의 2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우쓰미 데쓰야가 던진 공에 머리를 맞고도 1루로 걸어가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결승전에서는 나카지마 히로유키와의 충돌로 부상을 입었음에도 경기를 소화했다.[19] 2015년 2015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1월 21일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결승타를 쳐 우승을 이끌었다.[20]